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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법무법인 창천에서./판결로 바라본 그 때, 그 사건.

사람을 사람답게 대접하지 않는 이 법률조항은 위헌이다. - IMF와 부정수표단속법 (99헌가13)



6. 재판관 권성의 반대의견

... 中略 ..
 
   나. 앞에서 지적한 문제들이 내포하는 위헌적 요소들을 하나 하나 분석하여 논증하여 낼 필요도 없이 이 법률조항은, 국가권력에 대하여 사람을 사람답게 대접할 것을 명(命)하고, 법(法)을 법(法)답게 만들 것을 명하는 헌법의 기본정신에 어긋나므로 위헌이라고 생각한다.
 
수표의 부도를 내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정말 열심히 그리고 정말 성실하게 기업을 경영하였으나 경제여건이 뜻밖으로 변화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부도를 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회사의 돈을 빼돌리고 고의로 부도를 내거나 상대를 속여 돈을 융통하고는 부도를 내버리는 불성실한 사람도 있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이러한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을 구별하지 않고 똑같이 취급하는 것이, 상징적으로 단순화하여 쉽게 말한다면, 선(善)한 사람을 선(善)하지 못한 사람과 구별하지 않고 똑같이 매도하는 것이, 바로 이 법률조항인데 이것은 사람을 사람답게 대접하는 처사가 아니다. 사람들은 부당한 처사를 당하였을 때 흔히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어"라고 말한다.


성실한 기업가가 부도를 내고 구속될 때 그 내심에서 부르짖는 외침이 바로 이 말일 것이다.


나타난 사실의 이면과 경위를 살피지 아니한 채 사실의 외면만을 기준으로 하여 획일적으로 일을 처단하는 것은 국가의 입장으로서는 매우 편리하다.


그러나 국가의 편의만을 생각하여 외면만을 보고 사람을 다루는 것은 문명한 사회의 법이라는 평가를 받기 어렵다.


드러난 외면의 같음(同)만 보는데서 그치지 않고 그 이면의 다름(異)까지 살펴주는 섬세함이, 바꾸어 말하면 다른 것을 다르게 분별해내기 위하여 번거로움과 수고로움을 참아내는 인내심이 문명사회의 법이 갖추어야 할 기본요소라고 할 때 이 법률조항은 법이 법답기 위하여 갖추어야 할 기본요소를 결하고 있다.


이것은 이 법 탄생 당시의 권력실태를 생각하여 보면 쉽게 이해되는 일이다.
 
국가권력에 대하여 사람을 사람답게 대접할 것을 명하는 문명사회 헌법의 기본정신은 인간의 존엄성을 선언하고 있는 우리 헌법 제10조에 잘 드러나 있고, 국가의 법이 법답게 만들어질 것을 요구하는 헌법정신은 적법절차를 규정한 우리 헌법 제12조의 기초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일단 부도가 나기만 하면 옥석(玉石)을 구분(俱焚)함으로써, 성실하지만 그러나 불운한 사람을, 사람답게 대접하지 않는 이 법률조항은 헌법 제10조와 제12조에 위반되어 위헌임이 분명하다.

-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 2001. 4. 26.  99헌가13 의 반대의견 中, 재판관 권성




위 글은 권성 재판관 1인 만이 반대의견을 낸 99헌가13 사건에서 반대의견의 일부이다(즉 이사건에서 문제된 조항은 합헌 결정이 선고 되었다).
 
필자는 헌법 관련 판례집을 읽는 도중 위 글을 보고 무척이나 감동을 받았었다. 정말 판사 개인의 감정이 가득 실려있었고, 아마 본인이 직접 쓰신 것 같다. 사람 마음을 자극하는 글이며, 영미권에서나 볼 수 있는 글쓴이의 독특한 품격과 특징이 잘 드러나는 판결문이라 말 하지 않을 수 없다.

(참고로, 권성 재판관의 판결 위의 판결 말고도 사회적으로 영향을 끼친 일이 많다. 특히, 고등법원 판사 재직 시절 '항장은 불살이라'로 시작되어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의 형을 1단계 감하여준 판결은 특히 문제가 되었었다.)

이 판결이 나타나게 된 계기는 암울하였던 국가 경제 상황과도 맞닿아있었다.



부정수표단속법이라는 형사법이 있다. 이 법은 발행된 수표가 부도가 나거나 위조되는 등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피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수표의 부도 또는 위조수표 발행을 한 사람에 대하여 처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법률이다.


이 사건에서 문제된 법률조항은 부정수표단속법 제2조 제2항이다.

부정수표단속법 제2조(부정수표발행의 형사책임)

①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부정수표를 발행하거나 작성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수표금액의 10배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1. 가설인의 명의로 발행한 수표
2.금융기관(우체국을 포함한다. 이하 같다)과의 수표계약 없이 발행하거나 금융기관으로부터 거래정지처분을 받은 후에 발행한 수표
②수표를 발행하거나 작성한 자가 수표를 발행한 후에 예금부족·거래정지처분이나 수표계약의 해제 또는 해지로 인하여 제시기일에 지급되지 아니하게 한 때에도 전항과 같다.
③과실로 인하여 전2항의 죄를 범한 자는 3년 이하의 금고 또는 수표금액의 5배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④제2항 및 제3항의 죄는 수표를 발행하거나 작성한 자가 그 수표를 회수하거나, 회수하지 못하였을 경우라도 수표소지인의 명시한 의사에 반하여는 각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



즉, 이 법에 따르면 수표를 발행하거나 작성한 자가 수표 발행 후 그 수표가 부도가나는 경우 (심지어 그것이 과실이라 할 지라도) 거의 예외없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수표금액 10배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지는 것인데, 이는 상당히 센 형벌이라 하겠다. 이 법률 조항은 사업가에게는 사업 실패가 발생한 경우 거의 예외없이 감옥으로 가는 특급 티켓이라 할 정도로, 실제로 상당히 활용되는 조문이다.

위의 권성 재판관은 수표가 부도났다는 이유로 무조건 처벌하여야 하는 위 조항이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지 않는 법조항이라는 원색적인 표현을 하면서까지 법다운 법이 아니라고 강변한 것이다.

이 사건은 1997년 이후 IMF 사태로 인하여 수많은 기업이 부도 처리되고, 그로 인한 후폭풍으로 수많은 자영업자가 위 법률 조항으로 인하여 형사처벌을 받을 때에, 법원에 의하여 위헌심사가 제청된 사건이다. (이후 2009년에는 헌법소원이 된바 있으나, 이 때에도 이 사건에서와 같이 합헌 선고가 났다. - 2009헌바267) 우리는 아래의 법논리를 통하여 IMF 사태 이후 얼마나 많은 자영업자들이 아래와 같은 법률조항으로 인하여 처벌되었어야 하였는 지, 그리고 그 법이 추구하는 이상과 현실이 어느 정도의 괴리가 있는 지를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이 법률은 현재에도 규범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 사건에서, 위헌심판을 제청한 대전지방법원의 신청취지는 다음과 같다.

(1) 수표와 어음은 같은 유가증권이지만 어음이 신용증권임에 반하여 수표는 지급증권이다. 그래서 수표법은 일람출급성, 이자약정금지, 단기의 제시기간제도 등을 두어 수표가 신용증권화하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 그러나 백지수표나 선일자수표는 사실상 대여금채권의 담보나 장래에 발생하는 손해배상의 담보를 위하여 신용증권의 용도로 널리 변칙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와 같이 수표가 어음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수표는 부도시 형사처벌이라는 강제성을 띠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이 1990. 7. 10. 가입하여 조약 1007호로 발효된 국제연합의 '시민적및정치적권리에관한국제규약' 제11조, 즉 '어느 누구도 계약상 의무의 이행불능만을 이유로 구금되지 아니한다'는 명문에 정면으로 배치되어 헌법 제6조 제1항의 국제법존중주의에 위반된다.

(2)신용증권으로 변칙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수표는 어음과 같은 역할을 하면서도 어음의 부도와 달리 수표 부도의 경우 발행자가 형사처벌을 받게 됨으로써 합리적 이유 없이 수표소지인을 지나치게 보호하게 되어 헌법 제11조 제1항의 평등의 원칙에 위반되며 수표 본래의 지급증권성과는 무관하게 신용증권으로 발행된 수표가 부도난 경우까지 포함하여 발행인을 처벌하는 것은 부정수표단속법 본래의 입법목적 달성에 필요한 정도를 넘는 과잉입법이다.

(3)사업을 하는 사람의 경우 수표가 부도나면 그것이 일시적인 경영난에 의한 것이든, 소위 흑자도산 또는 연쇄부도의 경우이든 그 경위를 참작함이 없이 강력한 금융제재 뿐만 아니라 형사처벌까지 받게 되므로 그것을 피하기 위하여 또 다시 위법한 방법을 쓰게 되는 등 경제질서를 왜곡시키는 결과를 야기함으로써 헌법 제119조 제1항이 규정하는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경제질서에 반한다.

(4)수표발행인은 수표 부도 즉시 소지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금융기관의 고발조치에 따라 필연적으로 형사입건이 되고 나아가 인신구속에까지 이른다는 점에서 헌법 제10조 소정의 행복추구권의 일반적 행동자유권, 헌법 제12조 제1항의 실질적 죄형법정주의를 침해하는 것이고 이러한 형사처벌은 국민의 기본권 제한의 한계를 규정한 헌법 제37조 제2항에 위반된다.



이에 대하여 법무부장관과 대전지방검찰청 검사장의 의견은 아래와 같다.


(1)우리 헌법상의 국제법존중주의는 국제법과 국내법의 동등한 효력을 인정한다는 취지일 뿐 국제법우월주의를 채택한 것이 아니며 또한 국제연합의 위 규약 내용은 '계약상의 의무의 이행불능'만을 이유로 구금되지 아니한다는 것이고 이 사건 법률조항은 단순한 계약상의 의무의 이행불능 이상의 의미를 갖는 특별한 경우를 규정한 것이므로 위 규약에 배치되지 않는다.

(2)어떤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이에 대하여 어떤 형벌을 과할 것인가의 문제는 그 입법이 전체 형벌체계상 현저히 균형을 잃지 않는 한 입법정책의 당부의 문제이지 헌법위반의 문제는 아니다. 수표의 강력한 유통성과 신용성으로 인하여 수표의 부도로 인한 피해는 개인적인 범위를 넘어 전체 국민경제에 불신감을 조장함으로써 경제적 기본질서를 무너뜨리게 되는바, 특히 신용경제 개념이 부족한 우리나라의 현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수표 부도를 처벌할 필요가 더욱 크다. 또한 채권자들 사이의 우선 순위는 구체적인 거래태양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수표소지인이 가장 강력한 보호를 받는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3)어음은 신용증권인 반면 수표는 지급증권으로서 일람출급성이 있어 그 기능상 차이가 있고 따라서 어음에는 민사책임만 지우고 수표에는 형사책임을 수반하게 하는 것은 그 기능상의 차이에 따른 합리적 차별이므로 평등의 원칙에 반하지 아니한다.

(4)수표의 유통성을 보장하여 금융거래의 신용질서를 확립하고 궁극적으로는 국민경제생활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하는 이 사건 법률조항은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 헌법의 경제적 기본질서에 위반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합리적이고 건전한 경제질서를 확립하게 함으로써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경제상 자유와 창의성을 실현할 수 있게 하는 조항이다.



이와 같은 신청법원과 관계기관의 의견을 종합하여, 헌법재판소는 다음과 같은 관여재판관 다수의견에 따라 합헌 결정을 선고했다.

1.헌법 제6조 제1항의 국제법 존중주의는 우리나라가 가입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는 것으로서 조약이나 국제법규가 국내법에 우선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 사건 법률조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부정수표 발행행위는 지급제시될 때에 지급거절될 것을 예견하면서도 수표를 발행하여 지급거절에 이르게 하는 것으로 그 보호법익은 수표거래의 공정성이며 결코 '계약상 의무의 이행불능만을 이유로 구금' 되는 것이 아니므로 국제법 존중주의에 입각한다 하더라도 국제연합 인권규약 제11조의 명문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 아니다.

2.어음과 수표는 다같이 유통증권이기는 하지만 수표는 현금의 대용물로서 금전지급증권이라는 수표 고유의 특성 때문에 수표의 피지급성의 보장이 어음의 경우보다 더욱 강력하게 요청되는 점에서 어음과는 성질을 달리 하므로 지급거절될 것을 예견하고 수표를 발행하는 행위를 처벌한다고 하여 평등의 원칙에 반한다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신용증권으로 변칙 발행된 수표라 하더라도 수표 자체로 그 구별이 어렵고 또한 수표법상의 요건을 갖춘 수표라면 수표로서의 효력에 영향이 없어 언제든지 유통가능성이 있으므로 수표의 피지급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법의 입법목적 달성을 위하여는 위와 같은 수표도 그 적용대상으로 보아야 한다. 또한 수표소지인이 어음소지인이나 다른 채권자들보다 우선변제받게 된다는 것은 수표발행인이 처벌을 면하기 위하여 사실상 수표소지인에게 수표금을 지급하는 것 때문에 반사적으로 우선변제받는 것처럼 보일 뿐이므로 평등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 아니다.

3.이 사건 법률조항은 부정수표의 발행을 제재하여 수표의 유통기능을 확보함으로써 경제질서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하는 데에 그 입법목적이 있고, 또한 과태료의 행정벌이나 금융상의 제재와 같은 대체수단 만으로는 위 입법목적을 궁극적으로 달성하기에 부족했다는 그동안의 경험적 자각이 이와 같은 정책수단을 선택케 한 것으로 이러한 결단은 원칙적으로 존중되어야 한다. 수표의 법률적 특징과 강력한 유통가능성으로 말미암아 신용증권으로 변칙 발행된 수표 역시 이 사건 법률조항의 적용대상으로 보아야 하며 그렇다고 하여 이 사건 법률조항을 과잉입법이라 할 수 없다.

4.1993년의 개정으로 소지인이 처벌을 희망하지 아니하는 의사표시를 하면 수표발행인은 처벌을 받지 않게 되었고 또한 금융기관의 고발은 단지 수사의 단서에 불과할 뿐이며 인신구속에 관하여는 형사소송법의 구속절차에 따르는 것으로서 이 사건 법률조항과는 무관하며 또한 이 사건 법률조항이 채무불이행 자체만으로 처벌하는 것도 아니므로 실질적 죄형법정주의나 적법절차 조항에 위배되지 않는다.

5.이 사건 법률규정이 다소의 역기능이 있다 해도 그것은 대부분 이용자의 변칙이용의 결과이고 그로 인하여 우리 헌법이 추구하는 시장경제질서가 왜곡되어 헌법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