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2. 3. 작성된 글
그동안 오래 참았다는 생각이 든다. 2월 1일 일기에서도 조금 엿볼 수 있겠듯이, 8월 18일부터 책을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힘겨웠다. 그나마 있는 여유로운 시간에도 TV나 보고, 멍하니 있다는 것은 왠지 시간에 대한 사치로만 느껴져서.. 일병 진급에 이어서 내게 뜻밖에도 주님께서 선물을 주셨다. 원래는 일병 꺾여야 읽을 수 있는 책을 이른바 '김찬기의 난'을 통해, 지금부터 볼수 있게 된 것이다.
어쨌거나 예전부터 찜해두었던, 천마 도서관 안에 있던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부터 손에 잡았다. 송시열. 송자(宋子)라는 칭호를 얻을 만큼, 조선에서 가장 뛰어난 유학자로 평가받는 그의 삶을 제대로 알게 된 건 지금이 처음인 것 같다. 작가가 서문에서 밝힌 '호오(好惡)의 대상이 아닌 역사의 탐구'의 대상으로서 송시열을 재조명했다는 말은, 어쩌면 거짓일 수도 있다. 작가는 처음부터 송시열에 대한 비판을 하기 위해 책을 저술한 것이다. '재조명'이라는 말 자체가 그런 의도일 수도 있겠지만. 이 점을 분명히 하자.
어쨌거나 처음부터 나는 송시열을 잘 몰랐기 때문에, 그에 대한 좋은 인상도, 좋지 않은 인상도 갖지 않았다. 그저 백지 위에 글씨가 써지듯, 그렇게 송시열을 알게 된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본 송시열은 개인적으로는 검소한 생활을 83년 평생 유지하고, '효'와 '예'를 자신의 신념(주자학)대로 실천하고자 했고, 또 실천한 인물이었다.
주자를 신봉하고 그의 글을 인용하고, 그의 행동을 따라하고, 그가 배운 그대로 살고자 노력한, 사상가이자 학자로서는 커다란 흠집없이 일생을 살아간 인물이었다. 그래서, 조선 중후기의 최대 당파인 서인(특히 노론)의 영수이자 정신적 지주라는 위치를 누렸는 지도 모른다. 이러한 점은 본받을 만 하고, 꼭 내가 배워야 할 것인 듯 하다. 한가지 뚜렷한 신념을 세우고, 그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자세. 가히 인물 중 인물인 듯 싶기도 했다. 어디까지나 그를 혼자 두고 본, 개인적인 측면에서...
정치인으로서의 송시열은, 작가의 말대로, 조선의 발전을 저해한, 있어서는 안되었을 인물에 불과했다. 효종과 현종, 심지어는 숙종의 개혁까지도 사사건건 반대했고, 겉으로 내세웠던 북벌론과는 반대로, 실제로는 효종의 북벌을 막았다. 지극히 개인적인 정권 사수를 위해서. 사회의 발전을 거부하고(대동법을 반대했고), 옛것으로 돌아가고자, 옜것을 지키려고 고리타분한 외고집을 평생 계속했다. 정치적인 적, 정적에 대하여 관용을 베풀 줄을 몰랐고, 말 그대로 증오했으며, 그 증오를 실현시켰다. 그를 결국 죽음으로 내몬 것도 그의 그러한 성격 때문이라고 작가가 수많이 강조하듯이, 그는 정적이 너무나도 많았다. 관직에 있지 않았던 대부분의 기간 동안에도 실질적으로 조선의 신권을 장악했다. 가장 완벽하고 무서운 방법으로 자신의 신념을 퍼뜨렸고, 그의 절대적인 성리학, 주자학은 그의 사후 200년 동안 조선을 지배한다. 세계적인 조류에 역행한 채, 어쩌면 지금까지도...
어쩌면 나는 그와 비슷한 삶을 꿈꾸는 지도 모른다. 송시열의 주자는 나에겐 에비타이며, 송시열의 주자학은, 내겐 인권이다. 1세대 인권, 자유, 2세대 인권 평등, 3세대 인권 박애. 이 모든 것을 이땅위에 실현시키고 싶다. 그의 삶을 통해 본받아야 할 점과 버려야 할 점을 분명히 깨닫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 천성이 다른 사람의 말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어디까지나 나는 조화와 견제의 원리를 사랑한다. 참으로 의미있는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송시열을 긍정적인 관점에서 기술한 책을 읽어보아야 할 것 같다. 사물은 원래 앞과 뒤에서 모두 보아야 하는 것이다. 최소한 그래야만 한다.
# 한두가지 덧붙이자면
효종의 생활태도를 본받아야 겠다. 북벌, 그의 신념을 이루고자 효종 역시 10년의 볼모기간, 또 10년의 재위기간동안 여자관계(일종의 체력관리다)를 멀리 하고, 술을 마시지 않았고, 오직 복수를 위한 집념을 불태웠다. 무서운 집념. 나 역시 그 정도 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자신의 몸 관리는 해야 하지 않을까. 뜻을 세웠다면, 그 정도 성의는 있어야만 주님께 자신있게 기도할 자격이 생기는 것 같다.
숙종의 정치 역시 탐구해야할 대상이다. 멋지고 깔끔한 그의 일처리- 역시 일이란 한번 마음먹었으면 전광석화처럼 진행해야 한다. 시간이 걸릴수록, 저겡게 시간을 주느 ㄴ것에 불과하다. 14세에 왕위에 즉위하여 그나마 안정적인 국정을 운영하고, 왕권을 강화한 그의 처세도 어쩌면 그런 그의 행동 덕분인 듯 하다. 그 어지러운 당쟁 속에서도.
조선 후기의 역사는 참으로 아쉬운 것이 많은 것 같다. 광해군도 그렇고, 소현 세자도. 효종, 현종의 때 이른 죽음도. 훗날의 정조까지.
참으로 역사는 알면 알수록 배울 것이 발견된다. 용비어천가 속, '마르지 않는 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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