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I(의향서) 발행 후 본계약 미체결 시 손해배상 책임 발생 요건 및 범위
기업 간 거래나 투자 유치 과정에서 LOI(Letter of Intent, 의향서) 또는 MOU(Memorandum of Understanding, 양해각서)는 본계약 체결에 앞서 상호 협력 의사를 확인하고 향후 계약 조건의 기본 틀을 마련하기 위해 자주 사용된다. 그러나 LOI 발행 후 여러 사정으로 본계약 체결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 일방 당사자가 상대방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하는지 여부가 문제 될 수 있다.
이는 계약 체결의 자유라는 원칙과 계약이 체결될 것이라는 정당한 신뢰를 보호해야 하는 신의성실의 원칙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문제이다. 본 글에서는 LOI 발행 후 본계약이 체결되지 않았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법적 책임, 특히 손해배상 책임의 성립 요건과 범위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본다.
1. LOI의 법적 성격
LOI는 일반적으로 본계약을 위한 준비 단계에서 작성되는 문서이다. 따라서 그 자체만으로는 본계약과 동일한 법적 구속력을 가지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즉, LOI를 체결했다는 사실만으로 당사자에게 본계약을 체결할 의무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LOI의 구체적인 내용, 표현 방식, 교섭 과정에서의 당사자 간 의사표시, LOI 발행 이후의 행동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계약 교섭 단계에서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행위가 있었다면 손해배상 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
2. 계약 교섭 단계에서의 불법행위 책임 (신의성실 원칙 위반)
우리 대법원은 계약 교섭 단계에서의 책임에 대해 일관된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즉, 어느 일방이 교섭 단계에서 계약이 확실하게 체결되리라는 정당한 기대 내지 신뢰를 부여하여 상대방이 그 신뢰에 따라 행동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이유 없이 계약의 체결을 거부하여 손해를 입혔다면, 이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비추어 볼 때 계약자유원칙의 한계를 넘는 위법한 행위로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본다(대법원 2001다53059 판결 등 참조).
이는 계약 체결 이전 단계라 할지라도 당사자는 서로에게 신의성실의 원칙에 입각하여 행동할 의무가 있으며, 이를 위반하여 상대방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3. 손해배상 책임의 성립 요건
LOI 발행 후 본계약 미체결로 인해 손해배상 책임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다음 네 가지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1. 정당한 기대 또는 신뢰 부여: 계약이 확실하게 체결될 것이라는 정당한 기대나 신뢰를 상대방에게 부여했어야 한다. 이는 단순히 계약 체결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을 넘어, 구체적인 계약 조건에 대한 합의가 상당히 진전되었거나 계약 체결이 임박했음을 시사하는 언행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2. 상대방의 신뢰에 따른 행동: 상대방이 그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계약 이행을 준비하기 위한 비용을 지출하는 등 실질적인 행동을 취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제조업체가 LOI를 믿고 원자재를 구매하거나 설비 제작에 착수한 경우가 해당될 수 있다.
3. 상당한 이유 없는 계약 체결 거부: 계약 체결을 거부할 만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이유 없이 일방적으로 계약 체결을 거부했어야 한다. 단순히 더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는 제3자가 나타났다거나, 내부적인 변심만으로는 '상당한 이유'로 인정받기 어렵다. 예측 불가능했던 중대한 사정 변경 등은 고려될 수 있다.
4. 손해 발생: 상대방에게 신뢰에 따른 행동으로 인한 재산상 손해가 실제로 발생했어야 한다.
4. 법원의 구체적 판단 기준
법원은 위 요건 충족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사정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 정당한 신뢰를 부여했다고 볼 수 있는 사정
- 본계약 체결을 위한 구체적이고 확정적인 내용의 교섭이 상당히 진행된 경우 (인천지방법원 2017가합57652 판결 참조)
- 계약 체결이 거의 확실시된다는 취지의 통보가 있었던 경우
- 계약서 초안이나 양식을 송부하고 구체적인 계약 체결 예정일을 고지한 경우
- 상대방에게 비용 지출을 수반하는 준비 행위(예: 시제품 제작, 인력 채용, 원자재 구매 등)를 적극적으로 요구하거나 독려한 경우
- 정당한 신뢰를 부여했다고 보기 어려운 사정
- 단순히 계약 체결 가능성에 대한 희망적인 정보나 의견 교환 수준에 그친 경우 (서울고등법원 2016나2003438 판결 참조)
- 여러 업체와 동시에 교섭을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대방이 인지하고 있었던 경우
- LOI 자체에 '법적 구속력이 없음'을 명확히 명시한 경우
- 본계약 체결을 위한 필수적인 전제 조건(예: 이사회 승인, 자금 조달 완료)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였음을 상대방도 알고 있었던 경우
- 기타 고려 사항
- 해당 업계에서의 LOI 관련 거래 관행
- LOI 발행부터 계약 체결 거부까지의 시간적 간격 및 그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내용
- 계약 체결 거부 사유의 합리성 및 객관성
5. 손해배상의 범위
계약 교섭의 부당한 파기로 인한 손해배상의 범위는 원칙적으로 신뢰이익(Reliance Interest)에 한정된다. 신뢰이익이란, 상대방이 계약이 유효하게 성립될 것이라고 믿고 지출한 비용 상당액을 의미한다.
- 배상 대상이 되는 신뢰이익의 예시
- 계약 준비를 위해 지출한 실비 (예: 자료 조사 비용, 전문가 자문료, 원자재 구매 비용, 시제품 제작 비용 등)
- 계약 체결을 위해 투입된 인건비 등
- 다른 계약 체결 기회를 놓침으로써 발생한 손해 (단, 인과관계 및 손해액 입증이 명확해야 함)
- 이행이익(Expectation Interest) 배상 여부
- 이행이익이란 계약이 정상적으로 이행되었더라면 얻었을 이익(예: 예상 매출 이익)을 의미한다. 계약 교섭 단계에서의 부당 파기로 인한 손해배상에서는 원칙적으로 이행이익까지 배상받기는 어렵다. 이는 아직 계약이 성립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계약 이행 자체를 청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 다만, 예외적으로 당사자 간에 교섭 파기 시 손해배상액(예정)에 관한 특약이 있었거나 손해배상 청구를 유보하는 의사표시가 있었다면 그에 따라 이행이익 상당의 배상이 가능할 수도 있다(대법원 2020다285048 판결 참조).
6. 책임의 제한 가능성
법원은 손해배상액을 산정할 때, 피해자에게도 계약 교섭 파탄에 대한 과실이 있는지, 손해 발생이나 확대에 기여한 정도는 어떠한지 등을 고려하여 가해자의 책임을 제한할 수 있다(과실상계). 또한, 사업자로서 스스로 감수해야 할 위험의 정도 등도 참작될 수 있다(인천지방법원 2017가합57652 판결 참조).
7. 실무적 유의사항
LOI 관련 분쟁을 예방하고 불측의 손해를 방지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사항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 LOI 문구의 명확화: LOI 작성 시 법적 구속력 유무, 비밀유지 의무, 유효기간, 배타적 협상권 부여 여부, 본계약 불발 시 책임 범위 등을 명확히 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법적 구속력을 배제하고 싶다면 "본 의향서는 법적 구속력을 가지지 아니하며, 본계약 체결 여부는 추후 당사자 간 합의에 따른다" 와 같은 문구를 명시하는 것이 좋다.
- 신중한 의사표현: 계약 교섭 과정에서 상대방에게 지나치게 확정적인 언행이나 계약 체결을 기정사실화하는 듯한 표현은 삼가야 한다.
- 비용 발생 시 사전 합의: 상대방에게 비용 지출이 수반되는 준비 행위를 요구할 경우, 해당 비용의 부담 주체 및 본계약 불발 시 정산 방법에 대해 사전에 명확히 합의해 두는 것이 분쟁 소지를 줄일 수 있다.
- 커뮤니케이션 기록 유지: 중요한 협의 내용이나 요청 사항 등은 이메일 등 서면으로 기록을 남겨두는 것이 추후 분쟁 발생 시 입증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8. 결론
LOI 발행 후 본계약이 체결되지 않았다고 해서 무조건 손해배상 책임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LOI 발행을 포함한 계약 교섭 과정에서 상대방에게 계약 체결에 대한 정당한 신뢰를 부여하고, 상대방이 이를 믿고 비용을 지출하는 등 행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이유 없이 일방적으로 계약 체결을 거부하여 손해를 입혔다면 신의칙 위반에 따른 불법행위 책임을 부담할 수 있다. 이때 배상 범위는 원칙적으로 상대방이 지출한 신뢰이익에 한정된다. 따라서 LOI를 활용하는 당사자들은 그 법적 의미와 잠재적 책임을 충분히 인지하고 신중하게 교섭에 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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