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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집에서./책, 그리고 감상.

소설 주몽 - 한민

2006. 6. 5. 작성된 글




소설 주몽 이다.

 

책 표지를 보아하니, 요즘 하고 있는 드라마 주몽의 원작인 것 같기도 하고, (뭐 아닐 수도 있다)

 

군대의 유일한 동기(그나마 다른 중대지만) 이한솔 일병이 들고 있던 책을, 낚아채서 근무시간에도 보고, 틈틈히 보고 나니, 하루도 채 안되어 다 읽어버렸다.

 

640페이지가 넘는 데도 불구하고 금방 읽어버린 걸 보니, 책 읽는 속도가 좀 빨라진 것 같기도 하고... 뭐 아닐 수도 있지만(생각해보니 중학교 2~3학년 때 판타지 소설 1권 읽는 데 2시간이 채 안 걸린 것 같다. 그건 몇페이지였을까?).

 

어쩄거나, 이 책의 머리말에 있는 글이 흥미를 끌었다.

 

일본의 고대 신화 중 "소잔오"란 사람이 일본에서 주몽과 같은 신화적 인물인 듯 한데, 그 소잔오가 "주몽"의 동생 격인 부여 왕자 출신이라고 메이지 유신의 주역인 "시마다 준이치"란 사람이 말했다고 한다.

 

솔직히 역사학자가 될 생각은 없는 나로서는 여기까지로 관심을 끊기로 했지만, 만일 한단고기 같은 재야사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귀가 솔깃할 듯 하니 찾아서 읽어보기를.

 

 

지은이도 참 특이하다. 경희대 공대 출신이라는 데, 본명은 양근모 라고 한다. 근데 이름을 한민 으로 바꾼 것 보니, 내 생각에는 한민족의 한민이 아닌가 싶다. 머리말과 꼬리말을 보면 꽤나 민족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것 같다.

 

 

책의 내용은 주몽신화를 소설화한 것이니, 우리가 알던 주몽 신화에서 큰 줄거리를 벗어나지는 않는다. 다만, 주몽 신화에 대해서 이해하기는 좀더 쉬울 듯 하다. 우리가 말로만 듣던 "화성"을 사진으로 처음 접할 떄 기분이라고나 할까? 절대로 실제 볼 가능성이 희박한 "화성" 말이다.

 

내 생각엔 역사도 마찬가지다. 절대 실제 "고구려"를 볼 수는 없지만, 또 실제 "주몽신화"를 만날 수는 없지만, 사진처럼 어렴풋한 형태를 머리 속에 인식시킬 수도 있다.

 

 

해모수 -> 주몽 -> 온조&유리 로 이어지는 "천손"의 개념도 좀 특이하다. 고구려 건국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만날 수 밖에 없는 여러 부족과의 전투 묘사는 "삼국지"에 비해 질이 한참 떨어지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괜찮았다. 그나마 그와 같은 묘사를 하기도 힘들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당시 무기 체계도. 그리고 실제 위치가 어디인지도 모호한 곳을 장소로 삼아 전투 장면을 묘사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주몽의 동생인 "소잔오"란 캐릭터는 중국 주나라의 "주공"의 모습을 그대로 떠온 듯 하다. 실제 주나라의 "무왕"과 "주공"도 형제였지만, 무왕의 제위는 아들인 문왕이 물려받았고, 주공은 실질적으로 나라를 통치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문왕을 끝까지 보필했으니. 소설 속 "주몽"과 "소잔오", 그리고 "유리"의 관계와 빼어닮았다.

 

"마리"라는 주몽의 책사는 한고조 유방의 훌륭한 재상이었던 "소하"를 떠온 듯 하고.

 

 

주몽이야 뭐 신화적 인물이니, 그렇다고 치지만. 다른 인물들을 창조하는 데 꽤나 힘들었을 법 하다. 이름 짓기부터. 성격 묘사에, 그들의 운명까지 결정짓기란.

 

아. 고구려의 건국 과정에서 등장하는 타부족의 포섭 장면은 솔직히 좀 특이했다. "워렌 버핏"의 버크셔 헤더웨이가 다른 회사들의 주식을 장악하면서, CEO는 큰 문제가 없지않는 한, 그대로 유지시키는 그런 방식과 비슷했다. 워렌 버핏의 수많은 참모들은 미국인답지 않게, 또한 현대인답지 않게 수많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워렌 버핏"에게의 충성을 숨기지 않고 말하는 데, 그러한 카리스마, 또는 능력을 주몽도 가진 것일까.

 

그런 능력이 내게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직까진 내게 그정도 능력은 없는 듯 하다. 앞으로 없다 해도 솔직히 별로 상관없다. 난 처음부터 명재상이 되고 싶지, 넘버 원의 위치에 있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었다.

 

 

책의 내용 이야기는 이만 하고,

 

난 이 민족주의적 사학의 관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민족주의 사학의 문제점. 난 한민족이니, 한족이니, 일본민족이니 하는 그런 개념부터가 웃겼었다. 나중에 게시판 하나를 빌어 자세히 생각을 정리해서 쓰겠지만,

 

민족이란 개념은 어디에서 나온 것이고, 언제부터 나온 것인지도 궁금하다. 또한 부여가 우리 역사면 어떻고, 중국 역사면 어떻다는 것인지. 고구려가 우리 역사면 어떻고, 중국 역사면 어떻다는 것인지.

(물론 고구려가 실제로 우리 역사라면 중국 역사에 포함되서는 안되겠지만, 과거의 고구려 강역이 현재 대부분 중국에 속해있다면, 중국과 우리 나라의 역사로 설명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이미 수천년이 지난 지금 와서, 고구려가 우리만의 역사다. 라고 주장한다면, 중국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러므로 고구려의 땅은 대한민국의 땅이다. 라고 우리 나라 사람들이 주장할 개연성을 의심하게 되고, 사전에 예방하고자 동북공정이니 뭐니 하는 쓸데없는 돈 투자를 하는 것이다. 경제 성장에도 바쁠 나라일텐데.

 

같은 이유로 한단고기의 내용이 사실이라고 치자. 그럼 우리 나라의 정치적 성향이 전체주의적, 급진주의, 복고주의적인 것으로 발전하게 된다면. 과거 독일이나 일본과 같이, 지금의 중국, 몽골, 러시아의 중부, 동부 지역, 나아가 지금의 이란까지 온통 대한민국의 영토로 되어야 한다는 말이 나올 것이 뻔하다.

 

실제 임나일본부설과 같은 역사의 어떠한 이론은 일제 침략에 당당히 그 이름을 드러내면서 그 타당성과 명분을 제공하지 않았는가.

 

어쩌면 국사라는 과목을 없애야 할지도 모른다. 세계사 속에서 국사를 배워야 세계인으로서 타민족에 배타적인 우리 나라 사람의 모습을 조금씩 없애나갈 것도 같다. 동양사. 아시아사. 한반도사. 동아시아사. 여러 이름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살았던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공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 군부대라는 장소적 특성 상, 이 이야기는 이만 줄이도록 한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장편의 글을 써보는 것도 괜찮을 듯.

 

주몽 이란 책은 솔직히 오락으로서 읽을 만 하다. 주몽 신화를 꽤 괜찮게 소설화 한 것 같고, 또한 삼국지와 같은 초 장편 소설로 다시 써볼만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다빈치코드를 믿는 사람들처럼 "진실"로서 이 책의 내용을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이 점을 경계하자. 가능하면 "신화"로서, 그리고 "팩션"으로서 읽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