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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집에서./책, 그리고 감상.

오만과 편견 - 임지현 & 사카이 나오키

2006. 9. 10. 작성된 글


오만과 편견.

 

이 책도 산지 2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겨우 읽을 수 있었다. 예전, 수능 시험 후, 소영 누나에게 읽을만한 책이 뭔지 물어보니 가르쳐준 책이어 샀건만, (도대체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와는 조금 다르게,) 내용에 비해 다소 읽기에 어렵지 않게 써진 것 같았던 이 책도, 민족주의의 틀에 갖혀 있었던 고3 세계관으로서는 도저히 민족주의를 뛰어넘는 관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려웠다. 민족주의를 초월한 이야기를 두 지식인이 하고 있기 때문에.

 

어쨌거나 지금은 한번, 가볍게- 읽어보았다. 어려운 말에 신경쓰고, 또 궁금한 것 다 찾아보고 그렇게는 군대에서 할 수도 없거니와, 스스로 스트레스를 만들고 싶지 않았으므로.

 

 

# 민족.

 

 우리가 얼마나 일본을 비롯한, 선진문화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고, 우리가 얼마나 후진문명에 대해 오만할 수 있었는 지에 대한 두 지식인의 대화는 무척이나 충격적이었다.

 

정말 한국인은 일본인을 대할 때, 식민지배를 당했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제국과 식민지의 관계는 1945년 8월 15일에 땡 하고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우리들의 기억 속, 또는 교육을 통해 얻을 수 있던 이미지로서 우리의 미래를 어느정도 결정 짓는다. 일본이 잘되면 배아프다. 일본인을 납치한 북한의 행위에 대해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지만, 속으로는 "꼬시다(사투리인가;;)"라고 생각한다. 사실 아닌가; 나만 그랬던 걸
까.

 

그렇다면 우리는 일본을 싫어하는 것인가. 무작정. 그들이 우리를 지배했었기 때문에 일본은 우리보다 더 잘나서는 안되고, 우리와 맞부딪힐 때는 항상 양보하거나 져야 하고. 그래야 하는 걸까. 일본의 죄에 대해 일본인 개인들은 어떤 식으로 우리에게 보상하기를 진정 바라는 걸까.

 

임지현 교수의 폴란드에서의 유태인에 대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어느 집에 있던 폴란드인에게 유태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니, 온갖 욕을 다하면서 세상에서 그런 종족은 최악이라고 표현했댄다. 그리고 그 폴란드인에게 옆집에 살고 있는 사람(유태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댄다. 그러자 그 폴란드인은 그 사람은 매우 예의바르고 성실하며, 본받을 점이 많아 자기가 무척 좋아한다고 했단다. 유태인임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우리 한국과 일본에게도 적용될 법한 이야기이다.

 

만약 그렇다면(나는 일본인 친구가 없지만), 정말 일본인에 대해 위와 같은 딜레마를 가지고 있는 한국인이 있다면. 그가 실제로 일본에 대해 접한 것은 아마도 그 "예의바르고 성실한 일본인" 말고는 없을 텐데. 왜 일본이 평화헌법을 개정하려고 하거나, UN 안보리 이사국에 진출하려고 하면, (사실 많은 이유를 대지만, 실제로는 단지) 일본이기 때문에, 그토록 반대하는 걸까.

 

위의 두 지식인은, 이를 일종의 교육효과로 보고 있는 듯 하다. 실체가 없는, 제국과 식민지의 과거 관계를 오늘날까지도 연장시키면서 지배의 효율성을 더하고 있다는 것이다.

 

 

# 문화.

 

서양이란 것은 무엇일까. 두 지식인은 단연코 "서양"의 실체가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왜 서양은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일까. 처음 서양은 공간의 의미에 불과했으나, 현재는 왜 시간의 의미가 더욱 강한 것으로 바뀌어 가고 있을까.

 

서양 = 선진. 동양 = 후진.

 

이러한 공식으로 기억되는 우리에게, 실제 서양의 실체가 있다면. 동양의 일본, 그리고 서양의 동유럽, 중남미. 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 책은, 서양은 실체가 없는 것으로서, 과거 서구 세력이 식민지 정책으로서 서양은 반드시 배워야 하는. 즉 식민지가 발전하려면 당연히 제국의 모델을 따라야 한다- 라는 헤게모니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듯 하다. 왜 우리가 무작정 서양의 코드를 쫓고자 하는지. 사실 미국식, 또는 유럽식 라이프 스타일 말고도, 수많은 문화가 있지만 하필이면 서구문명을 쫓는지- 이 책은 제법 훌륭한 해답을 주는 듯 하다.

 

특히 이 책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우리나라에서 90년대 유형했던 오지(아프리카나 아마존 밀림에 가서 무언가 하는)체험 과 관련된 TV프로그램은. 서구문명에 대해 언제나 동양(후진)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을 수 밖에 없는 한국이, 아프리카-남미 와 같은 곳에서 활동함으로써 그들에게 한국을 서양으로서 알리는 것으로 얻을 수 있는 우월감. 다시 말해 후진국을 보고 한국에 대해 자기만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일 수 있다고 지적했던 내용이었다. 정말 그냥 지나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일 수 있지만. 난 정말 그런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보았었다-

 

 

# 인종. 성. 역사.

 

위의 두 주제 말고도 남은 세 주제에 대하여 두 지식인은 심도있는 이야기를 한다. 그 이야기들 역시 주옥같은 내용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보았으면 하는 책이다. 어쩌면 군대에서 보았던 책들 중 가장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책을 대학 신입생 때 추천해 준, 소영이 누나는. -_ - 솔직히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는 지, 그 정신세계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