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3 10. 25.)
소송을 하다 보면, 종종 허위사실이 기재된 서면이 제출되곤 한다. 허위사실로 인하여 승소 판결을 얻는 것이 소송사기인지 해당되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가끔 의뢰인들이 허위 사실이 적시된 준비서면이 제출될 경우, 모욕이나 명예훼손에 해당되어 형사고소가 가능한지 문의하는 경우가 있어, 아래에서 정리한다.
핵심정리
1. 민사
- 허위사실 또는 사실을 적시하여 제출한 준비서면을 제3자에게 제공하는 행위가 있었음이 증명되지 않는 이상, 공연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므로, 민사상 불법행위에 해당되지 않음.
2. 형사
- 일반적인 소송행위로서, 그 소송행위에 필요성이 있고, 제출된 서류의 내용이 소송과 관련 없는 제3자에게 알려질 것이라는 점을 인식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면 , 공연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므로, 형사상 명예훼손죄가 성립되지 않음.
민사상 불법행위 성립 여부 (참고 :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2021. 11. 3. 선고 2020가합107352 판결)
민법상 불법행위가 되는 명예훼손이라 함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함으로써 사람의 품성, 덕행, 명성, 신용 등 인격적 가치에 대하여 사회적으로 받는 객관적인 평가를 침해하는 행위를 말하고(대법원 2009. 4. 9. 선고 2005다65494 판결 참조), 모욕도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경우에 모욕죄에 해당하여 불법행위가 성립한다. 따라서 피고가 선행 소송에서 이 사건 준비서면을 제출한 행위에 공연성이 있는지 여부에 관하여 살펴본다.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인 공연성은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반드시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동시에 인식할 수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므로 비록 개별적으로 한 사람에 대하여 사실을 유포하였다고 하더라도 그로부터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면 공연성의 요건을 충족한다. 그러나 이와 달리 전파될 가능성이 없다면 특정한 한 사람에 대한 사실의 유포는 공연성이 없다(대법원 2000. 5. 16. 선고 99도5622 판결, 대법원 2011. 9. 8. 선고 2010도7497 판결 등 참조). 전파가능성이 있는지 여부는 발언을 하게 된 경위와 발언 당시의 상황, 행위자의 의도와 발언 당시의 태도, 발언을 들은 상대방의 태도, 행위자·피해자·상대방 상호간의 관계, 발언의 내용, 상대방의 평소 성향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하여 구체적인 사안에서 객관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20. 1. 30. 선고 2016도21547 판결).
피고가 선행 소송에서 이 사건 준비서면을 제출한 사실은 앞서 보았다. 그러나 위 준비서면이 법정에서 불특정 또는 다수인들이 듣는 가운데 그 내용까지 진술되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을 뿐 아니라, 법관 및 법원공무원에게는 법령에 의하여 비밀유지의무가 부여된다. 또한 민사소송법 제162조 제1항은 당사자나 이해관계를 소명한 제3자에 한하여 대법원규칙이 정하는 바에 따라 소송기록의 열람·복사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같은 조 제2항은 누구든지 권리구제·학술연구 또는 공익적 목적으로 대법원규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재판이 확정된 소송기록의 열람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나 같은 조 제3항에서 법원은 제2항에 따른 열람 신청 시 당해 소송관계인이 동의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열람하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피고가 선행 소송의 법관 또는 법원공무원, 당사자인 원고들과 피고 및 이해관계를 소명하여 소송기록의 열람·복사가 허용된 제3자를 제외한 사람에게 이 사건 준비서면을 제공하거나 그 내용을 전달하였다는 사실이 증명되지 아니하는 한, 피고의 이 사건 준비서면 제출행위에 명예훼손이나 모욕의 공연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명예훼손 또는 모욕을 원인으로 하는 원고들의 위자료 청구는 더 나아가 살필 필요 없이 이유 없다.
형사상 명예훼손죄 성립 여부 (참고 : 춘천지방법원 2013. 6. 26. 선고 2013노65 판결)
가. 이 사건 공소사실의 요지
피고인은 2012. 4. 26.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에 있는 춘천지방법원 영월지원에서, C 외 10명이 피고인을 상대로 제기한 위 법원 2012가단1233호 보상금지급청구 사건에 관하여 원고 선정당사자 C이 D을 증인으로 신청하자 이를 반박하는 취지의 준비서면을 제출하면서 "증인으로 신청한 D 전 번영회장은 39년 전 1973년 6월 ~ 12월 약 6개월간 E시장 번영회라는 명칭으로 일을 맡아 왔으나, 본인의 잘못된 번영회 운영으로 도주하였고, E시장 조합이 형성되어 있지 않았습니다."라는 취지로 기재하여 위 법원에 접수하고 법원으로 하여금 위 준비서면을 위 C에게 송달하여 C 외 10명의 원고들이 열람하게 함으로써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였다.
나. 원심의 판단
원심은, C 등이 피고인을 상대로 이 사건 소송을 제기하고 그 소송 과정에서 C 등이 D을 증인으로 신청한 사실, 이에 피고인은 D의 증인적격에 대한 의견이 기재된 이 사건 준비서면을 법원에 제출한 사실, 이 사건 공소사실에 의하더라도 피고인이 위 준비서면에 기재한 사실은 진실한 사실인 점, 준비서면은 원칙적으로 법원에 제출하는 것으로 일반적인 소송행위에 해당하는 점, 피고인의 위와 같은 증인적격에 대한 의견제출행위는 민사소송에서의 정당한 변론활동의 범위 내에 있다고 보이는 점, 피고인의 입장에서 이 사건 준비서면을 받은 C 등이 그 내용을 D에게 알려줄 가능성은 인식할 수 있으나 그 외의 제3자에게 알려줄 가능성까지 인식한다는 것은 어렵다고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의 이 사건 행위는 전파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피고인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였다.
다. 당심의 판단
1) 살피건대, 명예훼손죄에서 '공연성'은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하므로 비록 개별적으로 한 사람에 대하여 사실을 유포하더라도 이로부터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면 공연성의 요건을 충족하지만, 이와 달리 전파될 가능성이 없다면 특정한 한 사람에 대한 사실의 유포는 공연성이 없고(대법원 2011. 9. 8. 선고 2010도7497 판결 등 참조), 위와 같이 전파가능성을 이유로 명예훼손죄의 공연성을 인정하는 경우에는 범죄구성요건의 주관적 요소로서 적어도 미필적 고의가 필요하므로 전파가능성에 관한 인식이 있음은 물론 나아가 그 위험을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가 있어야 하고, 그 행위자가 전파가능성을 용인하고 있었는지의 여부는 외부에 나타난 행위의 형태와 행위의 상황 등 구체적인 사정을 기초로 하여 일반인이라면 그 전파가능성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고려하면서 행위자의 입장에서 그 심리상태를 추인하여야 한다(대법원 2010. 10. 28. 선고 2010도2877 판결 등 참조).
또한 형사소송에서는 범죄사실이 있다는 증거는 검사가 제시하여야 하고, 피고인의 변소가 불합리하여 거짓말 같다고 하여도 그것 때문에 피고인을 불리하게 할 수 없으며, 범죄사실의 증명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고도의 개연성을 인정할 수 있는 심증을 갖게 하여야 하는 것이고, 이러한 정도의 심증을 형성하는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대법원 2007. 11. 30. 선고 2007도163 판결 등 참조).
2) 위 법리에 비추어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을 이 사건 기록과 대조하여 면밀히 살펴보면, 피고인의 이 사건 행위에 전파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고, 가사 전파가능성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에게 이에 관한 인식 내지 그 위험을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이 되고 원심판결에 검사의 주장과 같이 법리를 오해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보이지 않으므로, 검사의 위 주장은 이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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