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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집에서./책, 그리고 감상.

유러피언 드림 - 제러미 리프킨

2006. 6. 21. 작성된 글




유러피언 드림. 2006년 5월 21일, 일요일날, 세번째 외박을 나가선 충동적으로 구매한 책이다. 그리고 최고의 책이다.

 

서점에서 제법 흥미로운 제목을 가진 이 책을 빼내어 들고선, "제러미 리프킨이 누구지?" 라고 물었을 때. 성욱이는 "엔트로피"를 쓴 사람이라고 했다.

 

엔트로피가 뭐지? -_ -? 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사기로 마음 먹는 데는 그리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이 책의 전체적인 내용을 아주 적절하게 나타낸 책의 뒷표지를 보고,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 듯.

 

책 뒷표지의 글 전문을 그대로 옮기자면.

 

"개인의 자율성과 부의 축적이 핵심인 아메리칸 드림은 더 이상 급변하는 미래 사회를 지탱할 수 없다. 이제 아메리칸 드림을 뛰어넘는 새 비전이 필요하다. 모두가 긴밀히 연결된 글로벌 세계에서 타인과의 관계와 삶의 질을 추구하는 유러피언 드림이야말로 미래의 새로운 비전이다.

 

 이성의 시대에서 공감과 인권의 시대로, 힘의 논리에서 다원적 협력의 시대로, 위험을 감수하는 태도에서 예방의 원칙으로, 과학만능주의에서 생태학적 접근으로 패러다임이 바뀐다. GDP, 생산성, 삶의 질, 교육과 문화 수준 등 모든 면에서 EU가 미국을 앞서고 있다. 리프킨은 그 이유를 유러피언 드림에서 찾는다. "유러피언 드림은 개인의 자유보다 공동체 내의 관계를, 동화보다 문화적 다양성을, 부의 축적보다 삶의 질을, 무제한적 발전보다 환경 보존을 염두에 둔 개발을 강조한다." 이러한 이상이 실현 가능할까? 리프킨은 모든 것이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는 글로벌 시대에 오히려 유러피언 드림의 이상을 따르지 않고서는 진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제 25개국 4억 5500만명이 "유럽 합중국"을 만들기 위해 모였다. 최고의 미래학자 리프킨은 유러피언 드림이 유럽 뿐만 아니라 세계의 미래를 향한 혁명적인 패러다임이라고 역설한다."

 

(꽤 길어 보이는 글이지만, 실제로 뒷표지를 보면 정말 얼마 되지 않는 양이다. )

 

 

# 뭐랄까. 시대의 요구가 들렸다.

 

이 책을 읽다보면 수없이 많은 배울 점, 외울 점, 느낄 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중 내 심장 위에 전기적 충격을 가했던 내용 하나만 꼽으라면, 난 이것을 꼽을 것이고, 이것은 분명 지금 우리 시대가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확신할 것이다.

 

<1948년 윈스턴 처칠은 유럽의회 연설에서 수세기 동안 전쟁으로 황폐화된 유럽의 미래를 생각하며....."모든 나라 국민들이 자신이 조국에 소속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자신을 유럽인으로 생각하고, 이 넓은 대륙에서 어디를 가든 '편안하다'고 진정으로 느낄 수 있는 그런 '유럽'을 만듭시다" 라고 말했다. 유럽 공동체 형성에 개인적으로 어느 누구보다 큰 영향을 미친 장 모네는..."문제는 하나로서의 유럽이 지금까지 존재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유럽'을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것은 사람들이 자신을 유럽인으로 인식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261p>

 

웬지, 2차대전이 종전된지 50년이 지났는 데도, 독도, 신사참배 등을 놓고 서로 으르렁대고 있는 우리나라와 일본의 관계를.

이젠 서로 갈 길을 가자고 UN에서 공식적으로 발표를 한다해도 어색하지 않을 북한과 남한의 관계. 고구려-발해 등의 역사를 왜곡해가며 가까이는 간도 협약의 불법성으로 만주의 영토를 우리나라로부터 필사적으로 지키려는 중국의 모습.

 

어쩌면 처칠의 말대로, 이 넓은 대륙에서 어디를 가든 '편안하다'고 진정으로 느낄 수 있는 그런 '아시아'를 만드는 것이, 동아시아에서 필연적으로 벌어질 수 밖에 없는 이데올로기의 충돌, 경제권의 충돌, 문화의 충돌을 예방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리프킨이 마지막 장 쯤에서 언급하긴 하지만 ASEAN 은 제 2의 EU로 평가 받는다(그의 말에 의하면). '오. 그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또 '걔네들이 뭉쳐봤자 뭐가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생각해보니, 동남아시아엔 비록 경제적으로 성공한 나라가 드물긴 하지만, 문화권은 인도네시아 같은 곳을 제외한다면 불교 문화권에, 언어권도 아주 큰 차이가 나지는 않을테고. 유럽과 위도와 경도가 다를 뿐, 뭉치기에는 적절해 보였다. 바다도 있고, 농산물도 많고, 싱가폴 같은 곳은 경제적으로 대박을 터뜨린 도시에. 물론 그들의 역사를 몰라서 하는 소리겠지만(어쩌면 우리나라와 일본처럼 국민 감정이 최악인 나라가 있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뭐 어때. EU엔 영국과 프랑스, 프랑스와 독일이 있다.), 어쨌건 ASEAN도 주의를 조금만 더 기울여나간다면 성공한 모델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또, 리프킨은 동양 문화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하면서(물론 스스로도 편견이 있을 수 있음을 밝혔지만), 아메리칸 드림에 비해 훨씬 공동체주의 적인 유러피언 드림보다도 더욱 강한 집단성을 가지고 있는 동양 문화권에서 의외로 EU와 같은 모델이 성공할 수도 있다고 한다. 예컨대, 우리는 한자 문화권이고, 유교 문화권(적어도 동남아시아까지는 그렇다)이다. 어쩌면 우리나라가 나아가야할 길은, ASEAN에 가입하고, 그 곳에서 동남아시아 전체와 한반도를 하나의 새로운 문화권으로 통합시켜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야만 그나마 중국의 저가 공세를 막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그렇지만 이런 문제에 대해서 나는 아는 것이 없다.ㅠ)

 

그리고 그 일은 누가 할 수 있을 지. 또 가능하기나 할까. 이러한 의심은, EU를 지켜보고. 또 누군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끝가지 나타나지 않는다면 결국엔 내가. EU의 초석을 닦은 장 모네와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공부를 해야 하는 데. 군인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이 그저 책 읽는 것 뿐이라는 사실이라는 게, 무척이나 짜증나는 듯 하면서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

 

# 푸른 수소, 검은 수소, 직접적인 나쁜 행위, 간접적인 나쁜 행위. 그것 뿐이 아니다- 계몽주의, 과학적 혁명, 청교도주의, 중세의 시간과 공간, 소유의 종말. 혁명. 개인주의, 합리주의/.-

 

아마도 리프킨의 "수소 혁명"과 "엔트로피"에서 언급될 것 같은 내용이긴 하지만, 리프킨은 이 책을 통해 미래의 모습을 아주 살짝 다룬다.

 

푸른 수소와 검은 수소가 무엇인지, 또한 직접적인 나쁜 행위와 간접적인 나쁜 행위는 어떠한 것인지. 그리고 심오한 놀이가 무엇인지.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

 

 

그리고 미래를 언급한 내용보다 훨씬 많은 내용을 과거의 이야기로 채운다. 현대 세계의 모습이 탄생되기까지의 사상적인 흐름, 경제적인 발전, 정치적인 모습, 일반 대중들의 삶을 중세시대부터 차근차근 써가며 분야별로 설명해준다. 그것도 대충 얼버무리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엔 고등학교 3학년 때 이 부분을 읽는 다면 세계사나 윤리의 철학 부분을 쉽게 이해하고 잊어버리지 않을 정도로 꽤나 자세하고 이해되기 쉽게 써 놓았다.

 

예컨대,

 

 중세 시대의 보통 평민이 일생동안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의 숫자는 3~400명에 불과했고, 평생 얻었을 정보의 양은 <워싱턴 포스트> 하루치의 글보다 더 적을 것이라는 이야기.

 

라든지,

 

 우리가 쓰레기를 버리는 행위와 같은 직접적인 나쁜 행위는 충분히 인식을 할 수 있고, 개인적인 양심과 사회적 교육을 통해 자제시키거나, 줄일 수 있지만, 우리가 나이키 신발을 구입함으로써 그 나이키 신발이 생산되는 제3국의 처참한 노동자의 인권유린을 방조할 뿐만 아니라, 지속될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한다든지.

 

이런 이야기도.

 

 또한 아마존 닷 컴과 냅스터 의 상품 판매 방식을 보면서, 가까운 미래(먼 미래가 아니다!)엔 아마존 닷 컴 식의 계약이 아닌 냅스터 식의 계약이 우리 일상을 차지할 것이며, 소유의 형태도 냅스터식(예컨대 돈을 내면 1달 동안 냅스터 싸이트에 있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단순히 계약과 배송이 온라인에서 이루어질 뿐 실제 상품이라든지 소유권은 종전 계약과 같은 아마존닷컴 식과는 확실히 차별화된다)으로 변할 것이다.

 

원더풀.

 

 

과연 우리가 어디에서 이런 다양한 분야(위에 써놓은 건 진짜 말 그대로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얻을 수 있을까.

 

 

# 찬양만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렇다로 리프킨이 유러피언 드림의 환상만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유럽이 처해있는 인구문제와 이민문제의 딜레마적인 성격이라든지, 미국과의 갈등 이라든지, 또한 영국의 애매한 태도(제 3의 길, 은 유럽을 따르지도 않는, 미국을 따르지도 않는 영국의 정책을 정말 적절히 설명해 놓은 책이다)로 인한 프랑스와 독일의 신경질 적인 반응. 기타.

 

유럽이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들, 충분히 예상되는 심각한 문제들을 많은 부분에 할당하여 서술하고 있다. 또한 기존의 사고 방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EU의 정체(EU는 기존의 국가나 국제기구의 중간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수도, 의회, 집행부, 사법부, 헌법 등 통치구조를 국가에 준할 정도로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토가 없는- 그런 특이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 UPO(미확인 기구)이다)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EU가 붕괴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기하기도 한다.

 

 

# 너무 어려운 책일까?

 

이러한 책을 부대 안에서 읽고 있으면 선임병들이 은근히 눈치를 준다. 왜 그런 책을 보느냐- 뭐 그런 식이다. 재미는 있나- 그런 은근한 압박.

 

솔직히 소설만큼 설렁설렁 읽어서는 시간낭비밖에 남는 것이 없는 그런 책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유러피언 드림이 어려운 책은 아니다.

 

지은이인 제러미 리프킨이 "와튼 스쿨"의 교수라서인지(이런 걸 볼때마다 미국애들이 부럽다), 대단히 어려운 내용, 또한 복잡한 의문을 담고 있는 주제에 대해서 최대한 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지은이가(또는 번역하신 분이) 애를 쓴 듯 하다.

 

 

고시 공부를 하는 친구들은 당장 읽을 필요도 없고 읽어서도 안되겠지만, 사법고시에 합격한 사람들이라든지, 국제관계나 유럽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은 이 책을 무조건 읽어라고 권하고 싶다. 

 

유러피언 드림을 통해 미래를 보는 눈이 밝아질 수 있다. 또한 미국문화와 유럽문화의 미묘한 차이점과 공통점을 찾을 수 있고, 산업시대, 근대, 현대, 포스트 모더니즘에 걸친 서구문화의 발전과 역사를 이해할 수 있다.

 

또한 EU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기회를 제공할 것이고, 조금 더 깊게 들어가서 대한민국이 어떤 길로 나갈 수 있는 지, 미래 우리 시민들은 어떠한 행동을 해야 할지를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