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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집에서./책, 그리고 감상.

당신들의 대한민국 - 박노자


2008. 7. 15. 작성된 글


당신들의 대한민국’ 중 ‘1부. 한국사회의 초상’을 읽고.

  내가 처음으로 한국 사회와 다른 사회를 겪은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었다. 당시 아버지를 따라 태국에 방문하였던 우리 가족은, 우리를 초대한 어느 태국인의 집에 머무르게 되었다. 어린 내 눈에도 일부다처제가 유지되던 가정은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여러 명의 아내들 사이에 존재하던 위계질서, 그 질서에 순응하던 내 또래 아이들의 모습은 아직까지도 기억에서 잊히지 않는다.


  아마도 한국 사회를 접한 후 박노자가 받았을 충격이 태국 사회에 대한 나의 충격과 겹쳐보였던 것은, 그가 푸른 눈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스스로를 한국이 좋아서 한국으로 귀화한 러시아 태생의 귀화 한국인이라 말한다. 다른 귀화인과는 달리, 그는 귀화 한국인의 입장에서 우리가 몰랐던 한국 사회에 대하여 거침없는 비판을 한다. 단일민족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한국 사회에서 살아왔던 우리는 박노자와 같은 사람을 발견하기 어렵다.


  그의 비판은 신선하고 날카롭다. 덕분에 나는 새로운 관점에서 한국 사회를 바라볼 수 있었고, 한국 사회에 철옹성같이 건재한 ‘불편한 진실’을 인식했다. 저자가 관찰한 한국사회는 전근대성을 갖는다. 이방인의 눈은 국가와 국민의 관계를 대등한 것으로 보지 않았다. 그에 따르면, 대한민국에서 개인은 성장제일주의, 오리엔탈리즘, 선민의식, 군대문화, 역사교육의 영향으로 국가가 요구하는 국민이 되어간다. 내가 발견한 불편한 진실은 바로 ‘개인 위에 군림하는 실체로서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국가’였다.


  실로 그렇다. 대한민국에서 개인은 국가를 위하여 존재한다. 물론 국가로서 대한민국은 북한을 비롯한 외세의 위협을 방지한다. 그 대가로 개인에게 국가의 체제 유지에 협조할 것을 요구하고, 이에 순응하는 개인에게는 체제를 위협하지 않을 만큼의 자유를 보장한다. 또한 학교교육과 군대를 통하여 끊임없이 국가의 존재와 필요성을 개인에게 인식시킨다. 그 결과 개인은 스스로를 국가와 동등한 지위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국가에 대하여 열등한 지위로 인식하게 된다. 그러므로 국가는 위기상황이 발생할 경우 여론을 통하여 위기감을 확대시키고 개인의 선택을 효과적으로 제한할 수 있다. 즉, 한국 사회에서 국가 없이 개인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발견할 수 없다.


  얼마 전 중국에서 투병생활을 하던 ‘켈로부대원’ 장근주 씨가 끝내 사망했다. 한국전쟁 중 미군의 켈로부대 부대원으로서 중국에 파견된 지 58년만이었다. 그는 한국전쟁이 종전되자 중국 공안에 체포되어 수년간 투옥생활을 하였고, 중국 국적 받기를 거부한 채 죽는 날까지 무국적자 생활을 하였다. 그의 사정이 알려지면서 국내에서 그를 돕고자 하는 운동이 펼쳐졌지만, 법무부는 그에게 국적을 부여하는 데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결국 그는 “뼈라도 고국에 묻어달라.”는 유언과 함께 한 줌의 재가 되었다. 그는 스스로 원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으로 인하여 징집되었고, 외국에 비밀리에 파견되어 첩보활동을 하였다. 전쟁이 끝나자, 국가는 그 대가로서 그에게 수년간의 타국 감옥생활을 선물했고, 죽는 순간까지도 철저히 그의 존재를 부정하며 상실감을 안겨주었다.


  역사적으로 국가는 개인에게 괴물 그 자체였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도 국가의 실체는 괴물이다. 그러나 인간은 정의를 이야기하고, 불의에 맞서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간다. 비록 장근주 씨가 국가에 의하여 또 하나의 희생양으로 한국 사회를 떠났지만, 나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개인이 공동체 안에서만 존재가치를 갖는 전체주의가 절정에 이르렀던 시절에도 언제나 이에 저항하던 시민들은 존재했다.


  우리 사회의 시민들도 병역 거부, 촛불 집회, 국민소환권 행사 등의 수단을 통하여 국가에 저항했다. 또한 우리에게는 6월 항쟁으로 대표되는 민주화 경험을 통해 발견한 새로운 가능성이 있다. 그 가능성은 우리의 가슴에 새겨졌고, 이것은 다시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힘이 되고 있다. 우리는 개인이 국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통합의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아마도 우리의 목소리가 계속되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