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밤, 집에서./책, 그리고 감상.

사람아 아, 사람아! - 다이허우잉


2008. 10. 7. 작성된 글


문화혁명 시기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사람아 아, 사람아!』을 구성한다. 문화혁명은 이들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만, 소설은 문화혁명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소설은 의도적으로 ‘과거’라는 용어 대신, ‘역사’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는 성질을 반영한 단어이다. 이 사실은 소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람아 아, 사람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마다의 역사를 갖고, 역사와 함께하는 삶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들이 모여서 하나의 소설을 구성하고, 나아가 중국 사회를 묘사한다.

 

문화혁명 기간을 거치면서, 그 시기를 살았던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역사에 대응한다. 먼저 역사적 한계에 굴복하고 말았던 ‘쉬허엉종’. 그는 “진짜 정황을 잘 모르”면서 권력에 협력한다. 그리고 권력이 이끄는 대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다가 자신의 삶이 “절반의 이기주의, 절반의 어리석음”이었다고 말한다. 권력에의 협력을 거부하는 것이 그의 역사 대응 방법이다. 그와 같이 권력에 협력하며 살았던 ‘요루어쉐이’는 “왜 내가 ‘반대’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을 가지면서도 <마르크스주의와 휴머니즘>의 출판에 반대하는 글을 쓴다. 그가 역사에 대응했던 방법은 “언제든지 반대파에 붙는 일격을 가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반면, 허징후는 역사를 극복하고자 한다. 그에게 역사는 “영원히, 오로지 큰 인물의 행동과 운명을 기록할 뿐”이며, 그 자신이 휴머니즘을 고취하고 당의 계급 노선에 반대했기 때문에 학교에서 쫓겨나 수십년 간의 유랑 생활을 했어야만 했다. 그럼에도 그는 결국 자신의 저작 <마르크스주의와 휴머니즘>의 출판을 위해 노력하고, 기다린다. 이러한 태도는 신세대인 ‘씨왕’에 이르러 더욱 적극적인 모습으로 변모한다. 그는 “허 선생님,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라며, 구세대에 비해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문화혁명은 『사람아 아, 사람아!』의 인물들에게 실로 막강한 위력을 미쳤다. 어떤 이는 ‘씨리우의 첩’이라는 팻말과 함께 군중 앞에 서야 했던 수치를 겪었고, 어떤 이는 유랑을 떠났으며, 어떤 이는 이를 이용하여 출세길에 올랐고, 어떤 이는 역사의 물결 앞에서 몸을 감추었다. 인간은 역사 앞에서 무력한 존재였으며, 사람은 역사에 의해 형편없이 더럽혀지기도 했다.

 

 역사는 가정에조차 영향을 미친다. 허징후의 아버지에게 불어닥친 혁명은 그의 자식에게 담뱃대만을 남길 수 있게 했고, 그의 자식은 “혼자 사는 것은 편한” 것으로 만들었다. 혁명은 자오젼후안에게 이혼의 핑계가 되어 주었고, ‘한한’으로부터 본래의 이름을 빼앗아 갔다. 혁명은 씨리우에게는 신분의 상승을 초래했지만, “부모에게 반항하는 불초자식을 들이밀”었다.

 

 역사란 실로 만만치 않은 상대이다. 불가사의한 것은, 역사의 희생자인 인간이 스스로를 희생자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87년 6월 항쟁이 있기까지, 한국의 지식인들은 대부분 역사의 희생자였다. 고문을 당하고, 언행을 감시당하며 심지어 생명을 잃은 경우도 있었지만, 역사는 결코 개인을 기억하지 않는다. 오늘날에도 살아 숨쉬는 87년 6월의 역사는, ‘386세대’라는 이름처럼 당시 사람들의 삶을 하나로 묶어버린다. 그 때 그 사람들은 역사로 인해 어떤 것을 잃었고, 어떤 것을 얻었을까. 당신들이 역사에 대응했던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왜 사람은 사람을 기억하지 못하고, 역사를 기억하는 것일까.

 

『사람아 아, 사람아!』를 보면, 사람이 가장 역사로부터 자유로울 것 같은 사랑조차도 역사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것 같다. 사랑은 사람에게 최고의 가치이다. 역사의 거친 흐름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사랑을 하고, 사랑은 사람을 이끈다. 그러나 그 사랑의 의미는 사람들마다 다르다. “나는 만족한다는 것을 알았지. 그러니까 행복해. … 생활이라는 것은 원래 그래야 되는 거야. … 인간, 그 외에 무엇이 필요하단 말인가?”라는 ‘리이닝’의 말은, 쑨위에에게는 ‘단순한 남녀 따위의 기쁨’에 불과하다. 쑨위에에게 사랑은 “모든 고통을 거듭거듭 반성해서 정련시킨 결정”으로, 운명의 신의 위력이 아무리 막강하더라도, 소중히 간직해야 할 대상이다. 허징후에게도 사랑의 결과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20여 년 동안의 숙제가 이로써 끝장이 났”거나, “‘무’에서 시작하든 ‘무’로 끝나”는 것은 그에게 별 의미가 없다. 그것은 오히려 그에게 한층 더 귀중한 차원의 사랑이 되는 것이다. 사랑에도 등급을 구분할 수 있다면, 리이닝이나 쉬어헝종의 사랑은 세속적이며 쑨위에와 허징후의 사랑은 이른바 ‘플라토닉 러브’에 가깝다. 그리고 『사람아 아, 사람아!』는 역사와 함께하는 플라토닉 러브를 이야기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이다. 그러나 스스로를 옥죄는 일이기도 하다. 허징후는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삶의 행복을 느끼지만, 쑨위에는 사랑을 느꼈기에 스스로를 자오젼후안과 결혼함으로써 구속시켰다. 솔직하게 말하면, 사랑을 하거나 서로를 믿는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은 그런 일을 한다. 그로 인한 고통을 염려하여 신은 ‘망각’을 선사했다. 20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 끔찍하다. 어떤 것은 잊혀져야 한다. 그들이 간직하고 있는 건 추억의 감정이 아니므로, 끊임없이 괴로워한다. 과연, 허징후와 쑨위에의 사랑을 20년간 유지시킨 것도 역사의 영향에 기인한 것일까? 소설은 이들이 사랑을 망각하지 않는 중요한 요인으로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들의 사랑에 역사는 일부일 뿐이었다. 분명 역사는 이들의 사랑에 영향을 끼쳤지만, 사랑을 망각하지 않는 힘으로 작용하지는 않았다. 역사는 이들의 동지애를 지탱했을 뿐이고, 서로를 존중하며 신뢰하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동지애와 신뢰를 뛰어넘는 감정으로서 사랑은 역사와 상관없이 각자의 기억에서 망각되지 않고, 자기영속적으로 존재했다. 그렇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사랑은 깊어지고, 20년이 지난 후 그 에너지를 견디지 못한 채 서로를 향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