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밤, 집에서./책, 그리고 감상.

조직의 재발견 - 우석훈

2008. 11. 6. 작성된 글

if, 미국 기업, 삼성

 

원래 법학과 학생이었던 내가, 사회학에 처음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던 것은 군대 시절에 우연히 읽게 된 제러미 리프킨의 ‘유러피언 드림’과 토머스 프리드먼의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때문이었다. 그리고 법학의 틀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사회과학 서적을 읽어보며, 이런 저런 잡학적 지식을 쌓게 되었고, 수업을 듣게 되었던 것 같다.

 

사실 사회학 수업을 시간표에 맞게 무작위로 신청하다보니, 현대사를 재평가하는 내용의 사회학의 다른 수업을 듣게 되었다. 그 수업에서 이승만, 박정희 시대를 긍정적으로 다루는 내용의 텍스트를 접하고, 내 사고 방식에 대하여 반성적 시각을 갖게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너무 좌편향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유독 우리나라에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댐으로써 폄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이었다.

 

‘조직의 재발견’을 읽으면서 묘하게 그 수업의 주제와 우석훈 박사의 문제의식이 겹쳐보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른 수업의 수업 시간에 제기되었던 문제, ‘만약 삼성이 본사를 미국으로 옮긴다면?’이라는 문제를 박사께 묻고 싶어졌다.

 

만약 정말 삼성이 본사를 옮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실, 내가 생각해도 삼성이 본사를 미국으로 옮길 유인은 충분하지는 않더라도, 전혀 없지는 않아 보였다.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이지만, 그룹 전체에 대한 국민의 공포감과 정부의 경계심은 이미 하나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우석훈 박사의 지적대로 조직의 실패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면, 한국의 인재들보다 미국의 인재들의 경쟁력이 훨씬 강한 것도 사실이고, 이들로부터 그룹의 혁신을 꾀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또한, 박정희 정권 때 사실상 삼성의 뒤를 봐주었던 정부는 이제 삼성을 드러내놓고 지원할 수 없게 되었고, 재계 서열 1위라는 위치 때문에 시민단체, 노동단체, 대학으로부터 각종 비난을 한 몸에 받는다. 이만하면, 이건희 회장도 ‘더러워서 미국으로 가버린다.’라는 말을 뱉을 만 하지 않을까?

 

물론 책에 쓰여진 대로, 다국적 기업이라 하더라도 본사를 옮기는 등의 행위를 하지 않는 경향도 분명히 사실인 것 같다. 그렇지만 만약에 삼성이 정말 미국 기업으로 변모하는 날에, 이 땅에 어떤 변화가 강제될 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막연하게 비관적인 전망만이 보일 뿐이며, 이번 미국발 금융위기 못지 않은 경제적 위기가 한국을 휩쓸 것 같다는 느낌 만을 받을 뿐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때문에 장하준 교수 특유의 재벌 옹호론이 설득력을 발휘하는 것이고, 우파(시장주의) 진영의 논리가 여전히 설득력 있게 들리는 것 같다.

 

내가 ‘조직’에 대해 실감한 것은 군에 있을 때였다. 나는 군대에서 비교적 지휘계통에서 가까운 라인에서 일 했었다. 사실 이등병 때는 모든 것이 싫었지만, 점차 계급을 더해갈 수록 새로운 것들이 보였다. 인사, 군수, 작전, 정보, 교육, 의무, 법무 등 군 조직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은 사회(혹은 국가) 같아 보였고, 50만명이나 되는 인력을 비교적 사고 없이 잘 관리해나가는 모습이 너무나 신기해보였다. 군대는 발전이 멈추어버린 화석 같은 곳 같지만, 지휘관이 바뀌고 병사들이 바뀌는 과정에서 천천히 변화하고 있었다. 또한 당시 정권의 성격 탓이었는 지,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도입하려 애썼던 모습도 보였다(상향식 점호제도, 팀 단위의 유격훈련 등의 새로운 제도가 많이 도입되었었는 데, 안타깝게도 정권이 바뀐 후에 이러한 제도들은 적어도 우리 부대에서는 모두 폐지되었다.). 간혹 누군가가 사고를 치고(내가 있었던 동안 우리 부대에서는 두 명이 자살했다.), 부대 자체가 박살날 것 같아 보였지만 한바탕 소란이 지나고 나면 비교적 충격 없이 군 조직은 더욱 안정감을 찾았다. 이러한 모습을 보며, 근대 사회에서 ‘군대’가 일정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역사가들의 지적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조직론이라는 것을 접한 것은 처음이다. 이러한 학문을 가르치는 것이 경영대학의 주 수업 내용인 지는 모르겠지만(정말 모른다.), 그게 사실이라면 경영학은 꽤나 재미있을 것 같다. 내가 그동안 알고 있던 조직에 관한 지식이라고는, 삼국지에 등장하는 각종 파벌 간의 암투, 권력 투쟁이나 과거 3김 시절에 있었던 각종 비화 정도에 그치지 않으니, ‘조직의 재발견’이 참신할 수 밖에 없었다. 경제학자들이 기업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다는 내용이나, 기업에는 특유한 무언가가 있다는 내용도 처음 들었지만 그동안 갖고 있었던 궁금증을 풀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왜 공직사회에서 기업 논리를 적용하려 했던 이명박 대통령이 실패하게 된 것이며, 구글과 같은 기업이 높은 수준의 복지를 제공하는 지도 이해가 갈 법도 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우석훈 박사의 서적들이 갖는 문제의식은 기발한 면이 많고, 또 시의적절한 것 같다. 독자들에 대한 설득력이 매우 강해서, ‘그래! 이게 문제야!’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역시, ‘대안’ 혹은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언급이 문제 의식에 비해 너무 초라해 보인다(무례한 말일지는 모르겠지만, 장하준 교수의 저작과 비교한다면, 이 점이 가장 큰 약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강의 시간에 말씀하셨다시피 이러한 느낌을 받는 이유가, 박사께서 직설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덕분에 내 마음이 시원해지지는 않는다.

 

며칠 전에, 문화방송에서 방영한 ‘서태지 심포니’를 본 적이 있었다. 나는 서태지 세대가 아니라서,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의 음악을 서태지 컴백 후에야 접할 수 있었기에, 그에 대해 잘 몰랐다. 그런데, ‘교실 이데아’라는 노래 가사를 보며, 박사가 보내는 20대를 향한 메시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바꾸지 않고 마음 졸이며, 젊은 날을 헤맬까.

바꾸진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정말 왜 바꾸지 않고, 마음 졸이며 젊은 날을 헤매고 있을까. 또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박사가 묻는 질문을, 서태지는 이미 십여 년 전부터 던져왔던 것이다. 십여 년 전부터 이 질문을 받아 왔던 우리는 침묵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