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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집에서./책, 그리고 감상.

깊이에의 강요 - 파트리크 쥐스킨트

2005. 2. 3. 작성된 글.




단지 네편의 단편작으로 구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합하여 100페이지를 넘지 않는 책이다.

부담없을 줄 알고 그냥 지하철에서 오가며 읽어재끼려 했는 데, 그러기엔 좀 어려운 듯(무게가 있는 듯) 했고.

느낌을 말하라면,

지금 난 책을 읽고 싶어서 읽는 게 아니란 느낌이 들었다.

무슨 소리냐고 묻는다면,

어느 누나가 추천을 해주었고, 저 작가는 어느 친구와 관련된 다른 책을 썼으니까. 그냥 읽어보아야겠다 란 생각을 강하게 가졌었나보다.

페이지를 넘길 때 항상 " 다 읽을 순간이 되어간다 " 라고 생각했으니까, 이건 뭔가 잘못된 독서방법이란 것이다.


어쩄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난쟁이가 하는 말, 을 읽었을 때의 느낌을 받았다.

한번에 이해가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깊이에의 강요, 와 승부, 는 그래도 재미있게 '이해'라는 것을 하면서 읽었는 데.

장인 뮈사르의 유언, 과 문학적 건망증, 은 "옮긴이의 말"을 마저 읽고서야 어떠한 것을 작가가 의도했는 지 알 수 있었다.


도서관에서 이 책 말고도, 두권을 더 빌려놓았는 데.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것들이 좀더 가벼운 내용(이해하기 쉬운 내용)을 담고 있었으면 좋겠다. 안 그래도 요즘 머리 아픈 일이 너무 많다.


아, 덧붙이자면.

깊이에의 강요//다른 사람의 말은 내게 영향을 크게 미치지 않게 하자고 나는 항상 생각한다. 그런데, 그 말들 때문에 내가 꽤 많이 영향을 받고, 어찌보면 우유부단하다는 것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 젊은 여류화가가 더욱 안쓰러웠다.

승부//"옮긴 이의 말"처럼, 난 젊은 신사도 아닌, 장(늙은 노인)도 아닌. 구경꾼의 부류였다. 어느 분야의 독보적인 존재도 아니고, 그 신화를 깨기 위하여 과감하게 장기의 말을 놓을 수 있는 용기를 지닌 것도 아니고. "옮긴 이의 말"을 읽었을 때 부끄러움을 느꼈다.

장인 뮈사르의 유언//솔직하게, 무슨 소리인가 싶을 정도로 좀 황당했다. 처음에는. 그리고 끝까지 다 읽었을 때도 뮈사르가 정신병을 앓았던 것인지, 아니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인지를 알 수 없었고. 옮긴 이의 말 을 읽고서야, 아, 그랬구나. 라는 느낌표를 머리 속에 떠올렸다. 세상을 비유해서 표현해놓은 글이었었다.

문학적 건망증//쥐스킨트의 자전적 에세이라고 하던데, 정말 누구나 하는 생각을 잘 써놓았다고 생각했다. 문학과 예술, 나아가 덧없는 삶은 정말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어떻게, 왜 미치는 것인지. 누구나 궁금해하는 것이겠지만, 정말 그것들의 대답이 알고 싶다.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