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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집에서./책, 그리고 감상.

고대 도시로 떠나는 여행 - 둥젠훙(이유진)

1. 날 표현하는 수식어 중 주변 사람들이 공감하는 하나가,  "역덕후"다. 어렸을 때부터 역사책을 좋아했고, 성이나 절, 묘 같은 유적지 여행을 좋아했다. 생각해보면, 내가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그런 장소 위주로 나들이를 다녔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2-1. 내가 변호사가 된 2013년 이후, 정확히는 2014년부터 해외여행을 많이 다녔는데-. 특이하게도 남들 다 가는 유럽이나 동남아 쪽은 거의 못 가봤고, 주로 일본, 중국으로 다녔다. 여행 블로그도 시간이 날 때에, 올려보려 하는데. 그 블로그를 봐서 알겠지만..

2-2. 일본과 중국 여행을 가면, 오래된 건물들을 많이 볼 수 있다는 게 가장 좋았다. 특히 2014년 여름에는 북경으로 출장을 간 적이 있었는데, "후퉁"이라고 불리는 옛 북경 성 내의 오래된 골목길을 보고 감동을 느꼈다. 몇 백년 전 길이 아직도 있다는 사실에 감동을 느꼈던 것 같고, 옛 명나라 사람들, 청나라 사람들이 걷던 길거리를 지금 중국인들이 걷고 있다는 게 신기하기까지 했다.

2-3. 두 번째 중국 여행은, 대학 동기들과 함께 제갈량이 끝내 도달하지 못한 "시안" -> "화산" -> "핑야오고성"을 8일 동안 다녔던 2016년의 여행이었다. 그리고 당시 장안성은... 정말 어처구니없을 정도의 규모였기에, 정말 강한 충격을 받았고 핑야오고성 조차도 어마어마한 크기에 내부의 건물과 거리가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어서 마치 타임슬립을 한 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장안성 남문(3중 성문 중 가장 바깥쪽 문이다). 사람의 크기를 보자.
진중현 핑야오고성(평요고성) 북문. 사람의 크기를 보자.

3. 이런 건축물과 유적지를 보고 나서, 나는 본격적으로 중국의 고대도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취미 삼아 읽어보고자 책을 찾아보았다. 왜냐하면 나는 언제든 중국 여행을 또 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전에 얕게나마 공부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중국 도시에 대한 책을 찾기가 어려웠다(사실상 "고대 도시로 떠나는 여행"이라는 책을 제외하면 판매 중인 제대로 된 책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알라딘에서 이 책을 주문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읽어보기 시작했다.


고대 도시로 떠나는 여행 (표지)

4. 이 책은 2008년에 쓰였고 2016년에 번역된 것이다. 그리고 저자인 둥젠훙 선생은 (아마도) 고대 건축물 전문가(1926년생이시다)이고, 문화혁명 때 무참히 파괴되는 유적에서 핑야오고성과 같은 고성을 지키는 데 일조한 것 같다(왠지 책 출판 시기를 보니 둥젠홍 선생의 유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4-1. 420페이지 정도 분량에 총 20강으로 중국 도시의 형성 과정, 명칭의 유래, 변형(발전) 과정, 보존 과정이 비교적 쉽게, 그리고 상세하게 잘 쓰여 있었다.

4-2. 책을 구성하는 20강 중, 3강 정도는 도시 형성의 과정과, 명칭의 특징(가령, 심양, 함양, 낙양은 물의 북쪽에 있기 때문에 "양"이 붙고, 회음과 같은 도시는 물의 남쪽에 있기 때문에 "음"이 붙는다. 참고로 서울의 옛 이름인 한양도 한강의 북쪽에 있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다.) 등 인문학적 관점에서 도시의 유래를 설명한다.

4-3. 도시 자체를 다루는 강의도 7~8 강 가량을 구성하고 있는데, 이 책에서 별도의 챕터로 다루는 도시는 대략 아래와 같다.

시안(장안) / 카이펑(개봉) / 베이징(북경) / 취안저우(천주) / 쑤저우(소주) / 핑야오(평요) / 리장(여강)

이 도시에 여행가는 분들은 가능하면 꼭 이 책을 읽어봤으면 좋겠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는가??

4-4. 나머지는 도시 내 지역에 따른 기능을 다룬다.

가령, 도시 내 거주지역의 특징, 사원과 사당 같은 종교적 기능, 궁궐과 같은 행정기능, 정원과 같은 휴식의 기능, 상징물, 성채(성벽)의 구성 등을 다룬다. 지루할 것 같지만, 도시 자체를 다루는 부분보다 이 부분이 무척 재미있다.

당나라 장안성 같은 경우는 도시 전체가 십자 형태로 조성되고 내부는 '방'이라는 단위로 구성된 계획도시(참고로 당나라 장안성은 현재 장안성보다 약 8배 정도 넓었다)이다.

 

당나라 장안성의 모습(그림은 인터넷에서 가져옴). 자세히 보면 방의 단위로 구성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사각형 하나, 하나가 방이다). 저 방은 동서남북에 외부로 나갈 수 있는 문이 있었고, 다른 방식으로 출입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었다.

대로가 있고, 그 대로 안에 다시 중로가 있고, 그 중로 안에 다시 작은 길이 있는 방식인데, 방 단위로 거주지 전체를 감싸는 담벼락이 있어서 외부로 출입하기 위하여는 반드시 방의 문을 통해야만 했고, 야간에는 구역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문이 폐쇄되었다고 한다. 언뜻 보기에는 굉장히 합리적인 것 같지만, 사람들이 생활하기에는 매우 불편하였는데.

예를 들면, 담만 넘어가면 바로 앞에 있는 시장을 가기 위해서, 마치 미로를 통과하듯이 정해진 길을 통하여 먼 길을 돌아가야만 했고(정상적이라면, , 이러한 불편이 누적되자 당나라 말기부터는 통금제도가 유명무실해지고, 결국 송나라 개봉성의 도시 구조는 길이 휘어지기도 하고- 사람이 편하게 다니는 구조가 되었다고 한다.

 

원나라 대도성(KBS 다큐 "도자기"에서 방영) 조감도. 가운데 황궁 앞 쪽의 공터가 보이는가?!

원나라 시절부터 수도가 된 북경의 도시 구조도 재미있는 것이 있다. 원나라 대도(북경) 성의 구조를 보면, 서울로 치면 세종로 같은 곳(즉, 황제의 궁궐 정문 앞)이 거의 궁궐 면적에 가까울 정도로 공터로 조성되었는데, 그 이유는 몽골 귀족들이 대도에 오면 그 장소에 게르를 치고 몽골식으로 거주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국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의 문화와 특성에 따라서, 같은 도시라도 완전히 다른 모습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중국역사나 도시(인문학적 공간으로서)에 관심이 많은 분들에게는 매우 추천하고 싶다. 이런 관점으로 우리나라의 고대도시를 다룬 책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혹시라도 있다면 읽어보고 싶다. 끝.